국내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전체 외국인 유학생 수가 지난달 기준 27만2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의 국내 취업률은 지난 2022년 기준으로 고작 6%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고등 교육을 받는 유학생이 늘고 있지만, 전문 인력으로 한국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수 년 간 정부와 대학, 지방자치단체는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왔다. 학령 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우수 인재를 유치해 기업과 지역 사회의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전문가들은 현 정책의 무게 중심이 유학생의 양적 팽창에 쏠려 있다며 앞으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 취업과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질적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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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서희


최서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이 유학생들의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외국인 유학생은 학위 과정·전공·언어 능력·유학 목적 등이 모두 다르지만, 정부와 대학은 이들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하고 총량적 국고채 수익률 목표 달성을 위한 ‘숫자’로만 접근한다는 것이다.
과거 국내 대학들은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지만, 최근에는 베트남 유학생으로 대체되며 새로운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정 국가 출신을 집단적으로 데려오는 방식에 의존한 결과 다양한 특성과 강점을 가진 외국인 인재를 원하는 기업 수요를 맞추지 못했고, 유학생 취업률도 저조한 공무원 신용대출 한도 수준에 머물게 됐다는 게 최 위원의 지적이다.
정부와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강화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많은 기업이 다양한 국적의 외국 인재를 채용하고 싶어하지만. 직무를 수행할 만한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갖춘 유학생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실시한 한국무역협회의 복수취급 조사에서는 49.5%의 기업이 “향후 3년 안에 외국인 사무직 근로자를 채용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한 바 있다.
김꽃별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기업은 주로 해외 마케팅 분야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고용하기를 희망하는데, 이를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비즈니스 한국어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생들은 한국어 능력시험(TOPIK) 대부중개업체 이나 사회통합 프로그램으로 한국어 자격을 취득하고 있지만, 기업이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학생의 국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학생들이 근무할 직무를 파악하고, 해당 직무에 맞는 비즈니스 한국어 능력을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유학생들이 실무 역량을 쌓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근 많은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응시자들의 직무 관련 경험을 중시하고 있지만, 유학생들은 전공 관련 인턴십이나 실습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엄격한 비자 규제와 외국인 채용에 대한 기업의 소극적인 태도 등이 유학생의 직무 경험 기회를 가로막는 이유로 꼽힌다.
최 위원은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채용 박람회 등은 단순한 정보 제공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역 산업의 인력 수요에 기반해 유학생들의 전공별, 학위 과정별로 차별화된 현장 실습과 인턴십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적극적으로 연계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유학생의 정착을 늘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문제에 대응하는 다른 국가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독일은 외국인 숙련 인력의 육성과 정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가로 꼽힌다.
독일의 ‘EU 블루 카드(Blue Card)’는 대졸 인력이 학위·직장·임금 요건을 충족하면 받을 수 있고 발급 후 27개월 이상을 일하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 EU 블루 카드는 해당 전공 분야에 취업해야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 독일은 이 같은 제한을 폐지하고 발급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부터 ‘기회 카드(Chancenkarte)’ 제도도 시행 중이다. 이 카드는 학력·경력·언어 능력 등을 점수화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입국 후 1년간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최서리 위원은 이 제도에 대해 “독일에 와서 생활하며 기회를 찾으라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일본의 경우 지난 2023년부터 ‘외국인 유학생 40만명 유치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과거에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를 늘리는데 주력했다면, 이 계획은 유학생의 취업과 정착을 확대해 초고령화·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점을 뒀다. 이를 위해 문부과학성이 12곳의 거점 대학을 선정, 지자체·산업계 연계해 경력 개발과 인턴십 기회 등을 제공하는 한편 각 국가 언어로 작성된 외국인 채용 정보와 취업 가이드북도 발행하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또 외국인 돌봄 인력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2019년에 도입한 ‘특정 기능 인력’ 대상에 돌봄 분야를 포함시켜 교육과 자격 요건을 갖추면 장기 체류를 허용하고, 유학생의 취업도 장려하고 있다. 김꽃별 위원은 “한국 역시 최근 노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관련 산업에서 외국인 인재의 양성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지역 사회의 인구 소멸 방지와 지방 기업의 인재 확보를 위해 더 많은 유학생이 정착할 수 있도록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과거 전문 인력이나 숙련 기능 인력 등에게 주는 E-7 취업 비자의 발급 대상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80%를 넘는 급여를 받는 외국인으로 한정됐다. 중소기업 취업자는 급여가 GNI의 70%를 넘어야 E-7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E-7 비자의 발급 요건은 올해 4월부터 GNI 기준이 폐지되고 연 2515만원에서 2867만원 이상으로 변경됐다.
경북 경산에 위치한 경일대학교 손용호 국제교류원장은 “많은 지방 소재 기업은 규모와 자본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속해 E-7 비자의 급여 조건을 맞추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방대 유학생들은 대부분 개발도상국 출신이고 생산직 업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사무직 근로자를 원하는 기업과의 매칭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에 위치한 경일대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들. 왼쪽부터 우엔티 응 옥 안(베트남), 히루미 사오미야 데오미니(스리랑카), 사빈 라베루니리나(마다가스카르). 이들은 졸업 후 국내에서 취업해 정착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상훈 기자


손 원장은 외국인 유학생의 지방 정착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에 특화된 비자를 계속 발굴하고 발급 요건도 지속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했다. 긍정적인 사례로는 F-2-R 비자를 꼽았다. 지난해 1월 도입된 F-2-R 비자는 국내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인구 소멸 위험 지역에 취업할 경우 발급되며, 장기 거주와 가족 동반이 가능하고 취업 직종에 대한 제한도 적다.
손 원장은 “임금이나 직군 제한 때문에 많은 유학생이 취업 비자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일부는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F-2-R 비자가 도입되면서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이 살아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국내 정착을 원하는 외국인 유학생과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역·기업의 수요를 다양한 측면에서 맞출 수 있도록 비자 발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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